시편 119편 어떻게 묵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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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현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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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어떻게 묵상할 것인가
하나님의 '가르침'에 헌신한 위대한 시
시편은 예술성이 뛰어난 영혼의 찬양이다. 이 중에서 119편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말씀을 찬미하는 가장 긴 시로, '토라'(율법) 신앙의 행복을 교훈하고 노래한다. 또한 선집 양식으로 구성된 히브리 시의 기교와 예술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다. 히브리 시의 특징은 다양하지만, 119편만의 특징이 있다. 첫째, 히브리 알파벳 22개의 순서에 따라 여덟 절씩 22개의 연으로 구성한 총 176절 시행의 '알파벳 시'(acrosticpsalm)다. 둘째, 눈에 보이는 질서정연한 형식미에 더해 시편의 독특한 문학적 감수성을 오롯하게 녹여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과 말씀이 하나님 백성의 삶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시편은 풍랑이는 질곡의 역사 속에서 절망과 회한을 지나 회복, 환희, 감사, 감격, 찬양에 이르기까지 솔직하고 대담한 믿음을 담아낸 '선집'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시편은 어느 특정 시대에 정박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신앙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주전 15세기에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90편)부터 주전 6세기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 땅에서 질곡의 세월을 견디며 깊은 슬픔을 노래한 익명의 시인까지(107,126,137편) 시편은 천년의 시간을 아우른다. 그렇게 시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된 인간 본연의 소리를 언어로 담아낸 거대한 집합체로, 노래이자 낭송하는 책이다.
119편은 무엇보다 언어가 매력적이다.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에 대한 열정, 경고나 격려까지 기억할 만한 언어로 응축시켜 표현했기 때문이다. 시행들 속에 풍부하게 드러나는 한 사람의 전기적인 요소들, 즉 착한 한 사람의 삶에 알알이 박혀 있는 사건들을 상상해보게 하는 흥미진진함이 있다. 이 시편을 여러 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편을 쓴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끊임없이 높이고 찬양하며 호소하고 기도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76절이나 되는 가장긴 시편을, 누구나 주목할 만한 영감받은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토라', 곧 그의 광범위한 '가르침'을 반복하면서도 전혀 지치지 않는 시인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벅찬 감격과 애끓는 사랑에 경이로움을 느끼된다. 전체 176절 중 무려 172개 시행게에서 하나님의 법을 직접 언급할 정도로 하나님의 '토라'에 집중하는 시인의 신앙과 헌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에 압도당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1. 알파벳 시의 구성적 특징
알파벳 시는 한국어로 '이합체' 또는 '답관체' 시로 알려진 문학적인 형식을 일컫는다. 이 시는 히브리어 첫 자음'알렙'부터 마지막 자음 '타브'까지 모두 22개 자음의 순서에 따라 각 절을 시작한다. 1절은 히브리어 첫 글자 '알렙'로 시작하는 단어가 첫 단어로 쓰이고, 2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베트'로 시작하는 글자가 시행의 맨 첫 자리를 차지하도록 구성하는 방식이다. 한글 자음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순서대로 각 절의 시행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ㄱ: 감사하라, 그의 가르침으로 삶의 길을 여신 하나님께
・ㄴ: 나의 길을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께
・ㄷ: 다시 피어나는 봄꽃처럼 우리를 소생시키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중략]
・ㅎ: 하나님께 감사하라, 공의로운 법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시는 그에게
이렇게 알파벳 첫 글자로 시행을 시작하는 시가 119편만은 아니다(참조.25,34,37,111,112,145편). 다만 119편은 알파벳한 글자가 여덟 절씩 하나의 연을 구성하고, 히브리 알파벳 자음 글자 수에 맞춰 22개의 연으로(8×22=176) 이어져서 가장길고 정교하다.
2. 왜 알파벳 순서인가?
알파벳 순서로 여덟 절씩 묶어 하나의 연으로 구성한 형식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오랫동안 호기심을 품어 왔다. 그러나 시편을 해석하는 학자들도 그 목적과 동기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이에 나름대로 타당한 추측이 제기되었고,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잘 기억하기 위해서다. 알파벳 시는 연상 작용을 통해 쉽게 외우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5세기 인쇄술의 발명 이후 우리는 깔끔하게 디자인된 다양한 역본의 성경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문서 보존은 서기관의 필사에 의존했고 어떤 형태의 문서든 고대세계에서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를 집안에 소장할 수 있는 계층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사본은 매우 희귀했다. 따라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려 한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암기였다. 말하자면 알파벳 순서에 의한 시행은 잘 기억하도록 돕기 위한문학적인 장치였던 셈이다.
둘째, 미학적인 완성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알파벳의 자음 글자 순서에 따라 여덟 절씩 하나의 알파벳 글자로 배열한 질서 있는 형태는 히브리 시의 특유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알파벳 순서에 맞춘 시행의 질서에 초점을 두느라 내용에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지 않을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학자 중에는 알파벳 순서에 치중하느라 일정한 구조나 흐름 없이 저작되었다고 혹평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율법'으로 번역된 '토라'를 포함해 동의어처럼 쓰이는 핵심적인 단어들(말씀, 판단, 증거, 율례, 법도들, 판단, 계명들)을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의 계시적 측면을 강조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더군다나 토라와 지혜, 탄식과 찬양, 감사와 탄원 등 인간의 감정과 정서가 풍부하게 스며 있어 히브리 시의 고유한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잘 드러내는 말씀으로서 '문학적인 기념비'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미적 완성도의 극치는 앞서 밝혔듯 여덟 절씩 22개의 연으로 176절(8×22=176)을 이루되 일관된 주제로 어우러지는 묘미에 있다. 예를 들어이 시의 첫 여덟 절의 각 시행에는 알파벳 첫 글자 '알렙'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줄지어 있다.
119편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각 연이 여덟 절씩 176절 시행까지 알파벳 순서에 따라 첫 소절을 시작한다. 시행들은 시인이 마치 수를 놓듯이 길고 조용한 시간을 통해 한절한 절씩" 토라에 대한 주제를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정교하게 지은 결과물이다.
3. '토라'와 '지혜'를 품은 시
이 시는 양식상 '지혜'이자, '토라시다. 시 자체에 토라와 관련된 지혜문학의 특징을 드러내는 주제와 어휘들이 다수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혜는 토라에서 발견된 신앙의 모습을 보충하고 재해석한다. 이러한 시의 특징은 1편과 19편에서도 나타나고 지혜문학적인 특징을 공유한다. 즉 성공적인 삶을 위한 규범과 교훈적인 내용을 담되, 삶의 지식뿐만 아니라 삶이 투영되는 예술성을 깊이 녹여낸다. 히브리 시문학과 지혜문학에 겹치는 요소들이 있는데 원수들에 대한 묘사, 화자에 대한 묘사, 하나님을 향한 신뢰 고백, 도움을 청하는 기도, 하나님의 개입을 바라는 무죄 주장, 율법(토라)에 대한 헌신과 순종, 탄원과 관련한 찬양과 서원, 토라 중심의 행복을 노래하는 것 등이다. 특히 이 시는 토라 시편으로 불릴 만한 시들처럼(72,89,98편) 토라와 지혜를 동일시하며 교훈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토라'의 핵심은 무엇일까? 토라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부여하신 가르침이다. '토라'는 유대 전통에서 '경' 전체를 언급하는 용어로서 주전 2세기 초벤시라(Jesus Ben Sira)의 시대까지 유대신학의 중심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목적을 자기 백성들에게 선포한 말씀이며, 백성 편에서는 삶의 기준과 표준으로 삼은 정경이다. '율법'으로 번역된 토라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토라)을 받기 전에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이미 기록된 것이다(창 26:5). 아브라함은 돌판에 기록된 법이 아니라 마음속에 새긴 가르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창 15:6). 이 점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인간의 몸에 기록하고 순종한 사람의 예다(참조. 렘 31:3134). 따라서 토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스라엘과 인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고 역사적으로 성취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이점에서 119편은 하나님 백성의 경건한 삶을 위한 도덕적인 진리와 은혜, 삶의 길을 안내하시는 하나님을 잘 드러낸다.
4. 시의 배열과 구성
특히 이 시는 앞서 언급했듯 토라를 가리키는 동의어처럼 쓰인 어휘들과 함께 토라를 찬양하는 노래이며, 인간이 언제나 하나님의 돌보심을 필요로 함을 보여주는 기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전체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드러내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토라'와 동의어처럼 사용된 핵심 어휘들을 여러 번 반복하여 사용한다.
'토라'-35회'말씀'(다바르)-22회'판단'(미쉬파팀)-23회'증거'(에두트)-23회'율례'(훅카)-22회'법도들'(픽쿠딤)-21회'계명들'(미츠오트)-22회'말씀' 또는 '약속'(이마로트)-21회
'토라'는 '가르치다', '교훈하다', '안내하다'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가르침', '교훈', '방향'을 뜻하는 여성 단수명사다. 그리고 앞서 밝혔듯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전체를 가리키는 용기도 하다. 즉 '토라'는 속박과 억압에서 노예적 삶을 살았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언약을 맺은 하나님 백성을 위한 삶의 방식을 교훈하는 방대한 안내서다. 한마디로 거친 광야의 삶에서 그리고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시인은 '토라'를 포함해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8개의 단어를 반복하는 형식으로 시를 지었다. 각각의 용어가 지닌 사전적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반복되는 개별 단어들이 모두 '토라'를 향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시의 응집력과 통일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한글로 번역된 다양한 역본들이 히브리어 단어를 모두 통일하여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본에서는 명확한 구별이 어렵다. 그렇더라도 알파벳 시로서 통일된 구성력을 갖춘 예술적인 히브리 시가 지닌 아름다움은 부인할 수 없다.
시인은 알파벳으로 매우 의도된 배열을 하고 있지만, 형식만 예술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니다. 삶과 세상과 역사의 현실에서, 또 우리의 경험 속에서 구약성경의 시편이 왜 존재하는지 그 깊이를 맛보게 한다. 119편을 읽는 동안 인간의 깊은 심연에서 하늘 왕좌에 올려드리는 기도가 천상의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지는 시인의 내적 흥분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김순영(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대학교)
[매일성경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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